•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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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르 짝지어 다니는 일본 아줌마 부대의 수다가 들렸다. 그렇거나 말거나 아내와 나는 작은 섬나라를 일주하는 중이다. 흙길은 늘 정겹다. 아내는 이렇게 단둘이 거니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단다. 물가를 곁에 두고 걷다보니 흙섬이 섬으로 지탱하는 까닭이 있었다. 굵은 자갈을 철삿줄로 엮은 그물에 가둬 지층의 유실을 방어했다. 다급한 마음에 짜낸 슬기였다. 외로이 밧줄에 묶여 흔들거리는 배 한 척이 보였다. 버려진 채 방치한 폐선도 있다. 팔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육지를 바라보며 애타게 손짓하는 서글픔이 잔뜩 묻어있었다. 처처에 음식점이다. 방갈로 추가 설치를 위한 공사도 한창이었다. 마지막 ‘책나라 축제’ 전시장을 끝으로 돌아온 선착장. 다행히 안개처럼 내리던 는개는 방금 개었다. 거닐기 시작한지 한 시간 만이었다. 호들갑에 가까운 장삿속을 조촐한 시심으로 추슬렀다. 제목은 ‘남이섬’
 
  뭍을 물에 묶느라고 철삿줄에 갇힌 자갈
  제살 깎는 아픔 딛고 쪽배 저어 닿을 때
  떠도는 그리움 모아 반만년을 태우고
 
  겨울연가 부르는 모씨의 목청을 따라
  솟대처럼 치솟은 메타세쿼이아 길에
  멈춰선 간이열차를 가로질러 걷다가
 
  방갈로 공사판 옆 먼지 앉은 벤치거나
  처처에 웃음을 파는 한물간 전시물 위로
  부슬비 강바람 불던 주식회사 남이섬
 
  사람이 차니 배가 떴다. 기껏해야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 배가 고팠다. 안내하는 직원에게 쓸 만한 음식점을 물었다. 읍내로 나가랬다. 결국 없다는 말이었다. 아이스크림으로 요기를 했다. 아내마저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과자가 맛있단다. 다들 배가 불러 투정인 걸까? 부쩍 늘어난 관광객을 뒤로하고 춘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모텔 ‘캐슬’이 보였다. 어젯밤 헤매다 포기한 곳. 잠시나마 있지도 않은 ‘성(城)’을 가리켰나하며 의아하게 생각했나보다. 경춘가도는 이전보다 더욱 매끄러웠다. 푸르른 산야를 맘껏 감상하며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렇지만 단 한순간이라도 주님의 은혜를 잊을 수는 없다. 나를 지으신 분이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알기 때문이다.
 
  춘천은 잠깐이었다. 세칭 호반의 도시로 알려진 곳. 즐비한 요식업 간판을 보니 죄다 ‘춘천 닭갈비’ 일색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다들 계륵에 막국수를 말아먹고 산다는 말인가. 아무리 몇 바퀴를 돌고 돌아도 찾고자하는 한정식 집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들른 곳은 길 옆 식당이었다. 그나마 아내의 제안으로 관공서 옆을 택한 게 주효했다. 값에 비해 그런대로 깔끔했다.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 셈이다. 일어나 ‘정동진’을 가려하니 아내가 썩 내켜하지를 않았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말을 들어야 한다. 미상불 음산한 날씨도 한몫을 거들었다. 다음 기회에 가기로 했다. 이왕지사 상대를 기분을 헤아리려면 당연지사 흔쾌할수록 좋다는 게 변함없는 나의 소신이다.
 
  아내가 강원대학교를 보잔다. 국립 거점대학들이 그렇듯 캠퍼스는 넓었다. 강원도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상아탑. 초기 기독교사대회를 여기서 개최한 바 있었다. 그때 기숙사에서의 체험담을 풀었다. 낡은 시설에 갇혀 당신을 그리던 3박 4일이 있었노라고……. 대충 훑어본 다음 시내를 뱅뱅 돌다 찾아간 곳은 한림대학교였다. 1980년대 초, ‘성심’이라는 이름의 병원 재벌이 당시 문교부의 인가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서울로 향하는 차안에서 떠올린 게 스웨덴의 ‘한림원’이었고, 그래서 ‘한림대학교’라고 정했다는 인터뷰 기사였다. 교정은 예전 성심여대 자리였다. 옛 건물을 거지반 그대로 쓰는 캠퍼스는 비교적 규모가 컸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97호)에는 ‘늦봄 보내기’ 최종회 ‘봄볕에 그을린 민사고’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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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늦봄 보내기 ‘닭갈비에 파묻힌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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