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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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적한 도로를 돌아 나오는 길에 거기서 일하는 아줌마 둘을 태웠다. 면소재지까지 부탁했다. 말을 거니 답답한 심중을 털어 놓았다. 오웅진 신부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매스컴의 위력을 들먹이며 후원금이 확 줄어들어 구성원들이 무척이나 힘들어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한 사람은 개신교 신자였다. 기부금(연보)이란 내 얼굴이 아닌 상대방의 사정을 헤아려 순수한 마음으로 쾌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혼동한 나머지 주고받는 성적표가 되고 말았다. 무슨 일이든 주께 하듯 할 때라야 비로소 복이 된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근사한 한정식을 맛보기로 했다. 가평 읍내를 샅샅이 뒤졌으나 눈에 띄는 간판조차 없었다. 하릴없이 ‘천궁’이란 음식점에 들어가 질긴 갈비탕으로 저녁을 때웠다. 종업원에게 괜찮은 숙소를 물었다. ‘캐슬’을 추천했다. 춘천 방향으로 가다가 금방이라는 말에 차를 몰아도 좀체 나오질 않았다. 무작정 가기도 그래서 다시 가평 쪽으로 차를 돌렸다. 그냥 지나친 ‘프라자모텔’에 묵기로 했다. 방문을 여니 탕 내 비슷한 공기가 온몸을 엄습했다. 필요 이상 보일러를 가동했는지 실내는 답답했다. 에어컨을 켜 열기를 식히자니 이래저래 낭비란 생각에 금방 끄고 말았다. 예배를 드리고 카운터에 연락했다. 스위치를 끄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밤새 개 짖는 소리는 새벽 단잠을 방해했다. 때문에 가면상태는 있었지만 거뜬한 몸으로 아침을 맞았다. 해장할 엄두는 내지도 못한 채 남은 과일과 삶은 계란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집 나오면 고생이요, 어딜 가나 집이 최고’라는 말을 새삼스레 확인한 참이었다. 서둘러 기도를 드리고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시동을 걸자마자 아내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어젯밤 기분이 별로였단다. 종업원의 무례를 나무랐다. 어엿한 부부를 두고 야릇한 눈총을 받았단다. 큰소리를 내기도 그렇고 해서 모른 척 넘겼으나 기가 막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눈초리를 번득이는 자들이여, 제발 정상을 비정상으로 착각하지는 말지어이!” 음란에 젖은 세태를 투영하듯 한심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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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섬’으로 향했다. 이른 8시 입장이니 조금만 기다리랬다. 그런데 대열에서 통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검표 담당 직원의 입이었다. 침체에 빠진 고향을 걱정하는 애향심이었다. 배에 올랐다. 10여만 평 크기의 작다란 섬이었다. 앞에 나타난 남이 장군의 묘. 약관의 나이도 되기 전 17세의 이팔청춘의 몸으로 무과에 장원급제한 뒤 고작 26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진 비운아였다. 채 10년을 못 채운 동안에 벌써 병조와 공조판서를 지냈다니 출셋길은 가팔랐다.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20대의 한복판에서 지레 세상을 하직했을까. 인재를 살리지 못하고 죽이는 데 골몰하는 민족치고 유사 이래 흥성한 적이 없거늘, 그래도 언로가 트였다는 조선왕조는 그 놈의 역적 모함이 사단이었다. 간신배 유자광에 의한 비극이었다.
 
  섬은 크고 작은 나무들로 덮여있었다. 먼저 '겨울 연가'의 촬영지를 찾았다. 영상을 통해 본 메타세쿼이아는 장대처럼, 장승처럼 서있었다. 하늘로 35미터까지 뻗는다는 침엽수 교목. 오래 된 잣나무와 은행나무도 많았다. 인고의 성상을 견뎌낸 족적은 더 있었다. 잔디를 심어 야영하기 편하도록 꾸민 공터는 뛰어놀기에도 좋도록 잘 다듬어 놓았다. 간이열차를 지나 그럴싸한 야외 공연장을 만났다. 배용준이 걸어간 발자국도 새겼다. 하지만 낡은 시설들이 자꾸 눈에 걸렸다. 만의 하나 상장기업을 만들고도 하루하루를 버티겠다는 옹고집이라면 심각한 일이다. 먼지 쌓인 벤치가 그토록 낯설게 느껴졌다.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는 데는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애써 가꾸지 않으면 퇴조하는 건 순식간이다. 온기를 줄 때 빛나는 게 조경의 이치 아닌가. 그러고도 흑자 경영을 홍보하다니 무모하지 않은가. 일본인 특수를 이끌어 ‘주식회사 남이섬’의 적자를 단숨에 뒤집었다는 자찬에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더욱이 그것이 혜성처럼 나타난 현 사장의 기획이라면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노파심에서 캐물어본 말이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96호)에는 ‘늦봄 보내기’ 네 번째 이야기 ‘닭갈비에 파묻힌 춘천’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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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늦봄 보내기 ‘육지를 껴안은 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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