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세상사는 이야기 증명사진.jpg
  드디어 예수님께 이 사건의 전말을 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간구는 아니었다. 그저 나의 상처받은 마음과 상한 심령을 위로 받고 싶은 내용이었다. 퍽이나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 사건을 심연에서 말끔히 지워버릴 순 없었다. 
 
  “예수님, 그 아이 참 나쁘죠? 왜 나를 이토록 가슴 아프게 하는 건가요? 나도 모르게 그 애에게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건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나쁜 일을 한 기억이 나질 않아요. 예수님, 불쌍한 저를 위로해 주세요! 네? 그 아이가 너무너무 얄밉고 원망스러워요…….”
 
  그 일이 벌어진 뒤 나는 더욱더 의기소침해졌다. 얼마 동안은 집에서 학교를 터벅터벅 오간 일 말고는 가히 두문불출이라고 해도 될 만큼 외부와의 접촉을 뚝 끊고 지내야 했다. 고작 텃밭에 나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어머니를 도운 일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먼발치에서 보게 되는 그 아이의 활달한 모습이 적잖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그 애가 눈앞을 스칠 때마다 나는 어디론가 얼른 숨어버리고 싶었다. 아니 나는 뻔뻔스러운 네가 싫다고 대차게 말할 수 있고, 내심 그런 인간이 역겨워지기라도 했으면 하고 바랐을 정도였다. 여기저기 활기차게 싸돌아다니는 그 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먼저 잽싸게 피해버리곤 했다. 왜 내가 고양이를 피하듯 쥐구멍을 찾아야 했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세상사는 이야기.JPG
 
  회고하건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쩌면 그 아이야 가볍게 친 장난이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한 소년의 여린 가슴에 무심코 못질을 해댄 몹쓸 짓의 결과였다. 상처받은 한 영혼이 이를 충분히 증명하였다. 나는 자라나면서 해맑은 발랄함으로 웃으며 뛰놀던 유년의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무르익어야 했고 달뜬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야 했던 어린 시절이었건만, 학교에 갔다 오기가 무섭게 꼼짝없이 잡혀 밭고랑에서 기우는 해를 맞이하곤 했다. 서럽게도 통틀어 봐야 몇 번 되지도 않은 그 알량한 소꿉놀이를 즐기다가 무참히 당한 일 하나가 이처럼 지난날 나의 뇌파에 깊숙이 틀어박힐 줄이야.
 
  그렇다면 그 엄청난 여파로 인해 움츠려들었던 나의 유년을 그녀는 무엇으로 보상할 셈인가? 혹자는 그 일이 그토록 심대했노라고 떠올린 글을 읽고 애써 철없는 소심증이라고 지나치듯 질책하겠지만, 이를 두고 그리 쉽사리 말할 것 같으면 어느덧 정년퇴직을 앞둔 나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선뜻 대꾸하고 싶다.
 
세상사는 이야기2.JPG
 
  “이보시오. 이는 결코 어느 누구를 위해(危害)하거나 폄하하려는 목적이 아니오. 그저 파적 삼아 던져보는 일회성 불평이거나 푸념 비슷한 넋두리가 아님은 물론이요, 더구나 어떤 과장이나 호들갑스런 변명은 더욱 아니라오. 다시금 밝혀두고 싶소만, 그 시절 그 가짜 눈깔사탕 사건이야말로 순수한 어린이에게는 기실 무엇보다 크나큰 중대사였다는 게 시방도 변함없이 품고 있는 나의 솔직한 심사이외다 그려.”
 
  물론 지금은 거듭난 영혼으로서 어떤 앙금이나 일렁이는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을뿐더러 이렇게 경수필 한 편의 제재로 십분 활용하고 있으니 듬뿍 감사할 제목이 아닐 수 없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93호)에는 ‘늦봄 보내기’가 이어집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72728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세상사는 이야기] 눈깔사탕 ‘잃어버린 소꿉장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