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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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인구 2,150만의 수도 베이징[北京]. 한눈에 고대와 현대를 아우른 면모였다. 필자의 중국 방문은 작년 겨울에 이어 두 번째. 작년 교직원 연수 때 중국의 절경을 두루 돌아본 이후 북경 풍경이 몹시 궁금하던 차였다. 56개 소수민족들이 모여 23성과 5자치구에 4직할시(북경, 상해, 중경, 천진)로 나누어진 땅을 이어서 밟는 감회는 새로웠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400~500만 명이 살아가는 자치구는 신강과 위구르 2개뿐인데, 200만이 넘는 민족 가운데 우리 연변조선족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비중으로 봐도 결코 적지 않은 규모. 퍽 고무적인 건 중국인이나 다름없는 그녀가 구사하는 우리말이었다. 비록 유창하지는 않지만 듣고 있으면 대견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 연변자치구에서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었다. 연변대학의 경우 교육과정상 한국어 수강이 가능하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만만디라더니 중국에서는 매사 일처리가 늦었다. 느긋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나기 십상이다. ‘매우 불편’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중국의 일상. 그랬는데 불과 1년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 작년 서안에서 받았던 인상과는 사뭇 달랐다. 가이드는 워낙 넓어 지역적 편차는 있을 거라고 수긍하며 넘어갔다. 그리고는 현 중화인민공화국이 걸어온 5,000년의 역사를 명청시대 400~500년과 결부시켜 다소 길게 소개했다. 그녀가 알리는 북경관광의 전반적인 코스. 내일부터 천단공원 내 명3능, 만리장성, 자금성, 이화원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란다. 볼 게 많은 북경에서는 바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며 명승지들을 나열했다. 예컨대 계림에 가면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입을 다물지 못해 눈 관광, 서안 병마용을 볼 때는 해설을 잘 들어야 하니 귀 관광, 백두산은 대자연과 마음을 주고받는 혼 관광지라고 요약했다. 그 혼을 빼는 관광지에 장가계 풍경구가 있었다. 그 천하 명산을 감상해야 중국의 진면목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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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는 이른바 4대 체험이 기다리고 있단다. 맨 먼저 자금성을 구경하고 내친김에 만리장성에 오른 뒤 오리구이를 배불리 먹고 나서 반드시 마사지까지 받아야만 피로가 풀린다는 얘기. 그나저나 찬바람이 매서웠다. 너무 추워 살을 엔다는 한국에 비해도 한수 위. 숙소로 향했다. 가이드는 중국여행에서 유의할 점을 재차 강조했다.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여권을 잘 챙기는 일. 둘째는 잡상인을 조심하되 사고 싶으면 반드시 흥정을 끝내고 물건을 받은 다음 돈을 건넬 것. 셋째는 마실 물은 가급적 ‘광천수’를 구입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했다. 일반 지하수에는 석회질이 들어있어 배탈이 나기 십상이니 반드시 끓인 물을 마시라는 것. 줄잡아 40여분은 걸린다던 용정화호텔. 4성급이었는데 아예 대놓고 로비에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카운터 앞이 연기로 자욱했다. 고맙게도 방에는 커피포트가 있었다. 환기할 겸 창문을 여니 고대와 현대의 어설픈 교집합. 곧게 뻗은 대로 옆으로 군데군데 보이는 굴뚝이 정겨웠다. 불만거리는 자동차 소음이었다. 감사예배를 드린 뒤 아들과 나란히 누운 잠자리. 아내를 딸내미에게 양보해서인지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눈을 뜨니 몸이 좀 무거웠다. 느닷없이 손기척을 하며 들어서는 아내를 보고 밤새 잠 한숨 못 잤다고 하니 눈치를 채고도 왜냐며 웃었다. 속삭이듯 옆구리가 허전해 잠이 잘 안 오더라고 털어놓았다. 그 낌새에 딸내미가 부담을 느꼈는지 흔쾌히 당장 엄마를 돌려주겠다고 나왔다. 퍽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아침예배를 드렸다. 문제는 또 있었다. 도무지 토막영어조차 안 먹히는 북경의 현실. 식당이 4층이라더니 2층이어서 헤매게 하질 않나, 계단과 통하는 길을 물으니 뱅뱅 돌게 하질 않나, 말하자면 외국인에게는 지나친 참을성을 요구했다. 식당 메뉴는 더욱 한심했다. 먹을 만한 게 선뜻 눈에 띄지 않을 만치. 달걀 부침개를 먹기 위해 줄을 서야 했고, 통째로 제공하는 과일은 껍질이 말라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은빛이 가까스로 몇 마디 중국어를 떠올려 의사를 전한 건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았는지 일행 가운데 하나가 딸내미 칭찬을 했다. 외고 출신이냐고? 우리 가족의 여정은 그럭저럭 이어지고 있었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82호)에는 ‘베이징 돌아보기’ 세 번째 이야기 ‘왕릉에서 보는 박물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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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베이징 돌아보기 ‘불편을 요구하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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